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도연맹 학살 사건 (문단 편집) == 기타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youtube(UoZS4qOFx20,width=400,height=225)]}}}|| 학살 당시 사망한 시신의 일부는 해류를 따라 [[일본]] 해안으로 가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런 시체들의 발견이 일본 신문에 실리기까지 했고, 이들의 시신이 [[일본]]에 안장되어 이들을 위한 합장묘소도 만들어졌음이 확인됐다. 당시 신문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머마신문.gif|width=100%]]}}}|| >아자모 먼 바다에 부패한 시체 >타살인가? 어선이 건져 >---- >야마구치현 고시가하마의 선장 스에다케 토라마츠 씨 소유인 마에마루(7명 승선)가 9일 오후 4시께 츠츠무라 아자모와 고토의 중간에 위치한 아자모 서쪽 근해 35마일 부근에서 주낙 조업 중 해상에 표류중인 시체를 발견하여 어선에 올려, 10일 이즈하라에 입항하여 이즈하라마치 경찰서에 신고했다. 검시에 의하면 죽은지 1개월이 경과하여 흉부와 복부에 걸쳐 부패하고, 인상은 판별하기 어렵지만, 신장 5척 5촌[* 약 165cm.]이고, 연령 추정은 30~40대 남자로 흉부를 굵은 새끼줄로 묶여 있었으며 양손에도 같은 흔적이 있었으므로 이즈하라 경찰서는 타살을 의심하고 있다. >1950년 9월 12일자 《대마신문》보도. 1999년에는 [[미국]]이 보도연맹 학살 당시의 몇몇 사진을 기밀 해제했는데, 모두 미 극동부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소속인 애버트 소령이 촬영한 사진이다. 보도연맹 학살에 관련된 사진은 거의 이 미군 소령이 찍은 사진들이 유일하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472636&cpage=&mbsW=&select=&opt=&keyword|미국이 1999년에 기밀해제한 사진 자료]]. 과거사 규명 차원에서 발굴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무수히 많은 유골들이 아직도 발굴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의 민간인 학살이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미국까지 민간인을 죽이지 말라고 경고하기에 이르자 그제서야 이승만이 보도연맹 학살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지금도 얼마나,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대한 연구자로 대표적인 인물로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활동한 한성훈 교수와 [[김동춘]] 교수가 있다. 한성훈 교수의 대표 저서 '가면 권력'과 김동춘 교수의 저서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보도연맹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최호근의 '제노사이드(부제: 학살과 은폐의 역사)'에서도 보도연맹 학살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